리투아니아 공화국(RepublicofLithuania). 발트3국 중 가장 낙후되었으며, 농업의 비중이 크다. 1991년 국제연합(UN)1994년구소련국가들 중 처음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2004년 유럽연합(EU)에가입.리투아니아인(84.1%), 폴란드인(6.6%), 러시아인(5.8%) 등 , 로마가톨릭교회(77.2%), 러시아정교회(4.1%) 인구 280만 정도( ) 면적 65,300(㎢) 겨울이 길고 흑야 영향인지 한때 자살률 1위, 한국이 2위 안타까운 순위.. 리투아니아 밀과 귀리 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 차창밖

2009년 유럽연합의 유럽문화수도, 동부의 벨라루스 국경과는 불과 32km에 불과할 정도로 리투아니아의 남동부 쪽에 위치 리투아니아 서남부 네리스강(Neris river)과 빌니아강(Vilnia river) 강을 사이에 두고 건설된 도시
1323년 리투아니아의 게디미나스 대공이 도시를 건설하고 수도로 삼았다. 15세기부터는 북부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서유럽의 유대인이 박해를 피해 빌뉴스로 대거 이주. 18세기 이후 20세기까지 반러시아 운동의 중심지.
1920년 폴란드-러시아전쟁으로 수바우키조약(Treaty of Suwalki)이 체결되자 폴란드는 빌뉴스와 인근 지역을 점령. 이에 따라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사이 리투아니아는 부득이 카우나스(Kaunas)를 임시수도로 삼았다. 폴란드가 1939년까지 빌뉴스를 점령하면서 많은 폴란드인과 벨라루스, 유대인 등이 이주하였는데 당시 빌뉴스 인구의 약 30%는 유대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독일은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빌뉴스를 점령하였고 유대인을 포함하여 빌뉴스 인구의 약 1/3이 나치에 의해 희생 당하였다.1944년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병합하면서 리투아니아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의 수도가 되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현재도 많이 남아있다. 1990년 3월 리투아니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1991년 1월 소련군이 공격 소련의 붉은군대는 1993년에 모두 철수.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 특히 시의 북쪽 네리스강은 시의 행정과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되어 여러 상업시설과 쇼핑센터가 들어서고 148m에 달하는 유로파 타워(Europa Tower)는 시의 랜드마크. 경제중심지로 제2의 도시인 카우나스와 여러 지역보다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
수도 빌뉴스 여행의 시작지, 유일한 성문- 새벽의 문
대통령궁 - 현재 대통령 거주
러시아 정교회 건물 앞 시장
유명 예술가들의 그림과 문신 거리
빌뉴스 대성당은 네모꼴의 로마 신전 형식으로 도리아식 기둥이 매우 웅장. 성당 지붕에는 3명의 성인 헬레나, 카시미르, 스타니슬라우스 상이 자리. 성당 앞 광장은 리투아니아의 심장과 같은 곳으로 광장과 연결된 게디미나스 대로는 빌뉴스 최대의 번화가.
빌뉴스성당과 성당에서 보관하는 성경책은 유럽에서도 가장 오랜 고딕양식 장식으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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