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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길/축제 관광

사진찍기 좋은곳7 (여주 신륵사)

by 여가온 2021. 11. 15.

신륵사는 여러 가지 문화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고찰이기도 하지만 설경과 일출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는 명소이다. 눈이 흠뻑 내리는 날, 많이 추우며 습도가 높은 날 상고대를 찾아 가면 겨울 절경을 만날 수 있다. 2021 새해 벽두에 상고대를 즐길 수 있어 행복한 날이었다.

 

경기도 여주시 봉미산에 있는 사찰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근거는 없으며 고려시대 말기에 당시 왕사였던 나옹선사 혜근이 잠시 머물던 중 입적한 사찰로 유명하다. 고려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고 당시의 유물들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조사당과 다층석탑, 전탑, 석등, 석종과 문화재급 법전 다수를 보존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억압하면서 신륵사의 여력도 위축되었는데 세종의 능이 여주로 이장되면서 왕실에서 신륵사를 왕실의 원찰로 삼았고 1472년에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절이름을 ‘신륵’이라고 한 데는 미륵 또는 왕사 나옹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나타난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웠으므로 사람들이 잡을 수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고 하여 절이름을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 절은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경내의 동대 위에 다층전탑이 있는데, 이 탑 전체를 벽돌로 쌓아 올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절이 대찰을 이루게 된 것은 나옹이 이곳에서 갖가지 이적을 보이면서 입적하였기 때문이다. 나옹이 입적할 때 오색 구름이 산마루를 덮고, 구름도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으며, 수많은 사리가 나왔고, 용이 호상(초상 치르는 모든 일을 주장하여 보살피는 것)을 했던 일들이 그것이다. 3개월 뒤인 1376년(우왕 2) 8월 15일에 절의 북쪽 언덕에 정골사리안한 부도를 세우는 한편 대대적인 중창이 함께 이루어졌다.나옹의 화장지에 세워진 삼층석탑 옆에는 강월헌()이라는 6각의 정자가 있다. 그 전에 지어진 것은 1972년의 홍수로 떠내려가고, 그 뒤 삼층석탑보다 조금 아래쪽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누각의 이름인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인데, 그를 추념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또한 구룡루는 1689년(숙종 15)과 1749년(영조 25), 1860년(철종 11)에 각각 중수된 기록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륵사 [神勒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